쏘라비안 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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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라비안 나이트 17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2:53
조회
41
그러다가 2001년 말 우리 가족이 아직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에 있을 때 김 사장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매우 이례적인 메일이었다. 보통은 선교사가 후원자에게 기도제목을 부탁하는데, 이번에는 후원자가 선교사에게 기도제목을 부탁하는 것이었다. 김종한 사장님은 메일을 통해 매우 긴급한 기도제목을 부탁했다.



내용은 장안동에서 하는 헌트 가게를 정리할 지도 모른다면서 기도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에는 영업이 잘 되지 않아 매장을 줄이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다음 메일에서는 헌트에서 매장을 줄이면 영업을 허락할 수 없다고 했단다. 그래서 매장을 줄이지만 헌트가 계속 영업을 할 수 있게 기도해달라고 하는 부탁이었다. 나는 그저 기도하는 것 밖에는 할 것이 없었다.



그러다가 며칠 후에 다음과 같은 메일이 날아왔다.

“선교사님, 그 동안 기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기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결국 매장을 닫기로 했습니다.”



그리고는 김종한 사장님으로부터 연락이 끊어졌다. 나는 그 분의 집주소도 모르고 전화번호도 몰랐다. 물론 우리 가족을 위한 헌금도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태였을 것이고, 헌금하는 분의 명단에서 김 사장님의 이름도 없었다. 나는 그저 사정이 많이 어려워졌나보다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우리 가족은 자카르타에서의 삶을 마치고 다위와 호세와 함께 모두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OMF 사무실도 수지에서 동서울 시외버스 터미널 근처로 옮겨서 열심히 대표 일을 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재정을 맡고 있는 김 준한 총무가 어떤 분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있었다. 김종한 씨냐면서 전화를 하는 것을 옆에서 들었다. 나는 김종한 사장님으로부터 사무실로 전화가 왔다는 것 때문에 무척 반가웠다. 무슨 내용의 통화를 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여하튼 한번 사무실을 방문한다고 했단다. 나는 그저 반가운 마음에 김 사장님이 OMF 사무실을 방문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 일이 잘 되어 후원을 재개하게 되었나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며칠 후 드디어 간사들과 함께 식탁 테이블에 앉아서 회의를 하고 있을 때 한 남자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김준한 총무가 누구냐고 물었다. 그리고 자기가 김종한 이라는 사람이라고 밝혔다. 나는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얼굴도 모른 채 저를 10년 간 후원해 준 것에 대해서 고마워서 내 방으로 얼른 모시고 들어갔다. 그리고 김종한 사장이 어떻게 OMF 사무실을 찾아 왔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는 가게를 정리하고 길거리에서 행상도 하면서 온갖 어려움을 다 겪었다고 내게 말해 주었다. 어려운 생활을 말하면서도 나에게 하는 선교 헌금을 끊은 것에 대해서 미안해했다. 나는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 내가 무슨 도움이 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지금은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김 사장님은 청하라는 회사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곳에서 외판원 일을 시작했는데 지금이 말하자면 오리엔테이션 기간이란다. 자기에게 할당된 몇 개의 물건을 팔아야한 하는데, 그럴 만한 곳이 없어서 이렇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노라고 했다. 그리고 2,3일 내에 일정한 실적을 올리지 못하면 이곳도 나와야 할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