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라비안 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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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라비안 나이트 18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2:54
조회
52
그러면서 혹시 사무실에 정수기가 필요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복선이 깔린 질문임을 눈치 챌 수 있었다. 그 당시 우리 사무실에는 이미 정수기가 한 대 있었다. 하지만 수질이 나쁘면 하나 교환할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김종한 형제에게 사무실에 있는 정수기의 수질을 검사해 보라고 부탁했다. 그는 물을 따라서 자기 나름의 검사를 하더니 간사들 앞에서 “아, 정수기가 아직 쓸만하네요.” 하고 간단하게 말을 해주었다.



아니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정수기를 새로 사줄 수 있겠나. 나는 나름 정수기라도 하나 사주고 싶었는데, 우리 정수기가 아직 쓸만하다는 바람에 그것도 쉽지 않게 된 것이다. 세상에 아무리 사람이 수단이 없어도 그렇지 장사를 하려면 현재 있는 물건이 나쁘다고 해야 하는데, 김 사장님은 장사를 할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혹시 정수기가 아닌 다른 물건을 혹시 사 줄까 하고 카탈로그를 보여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가방 안에서 카탈로그를 꺼내서 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카탈로그에 있는 물건들은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대부분의 상품은 독일에서 수입한 것이다. 그래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명함과 카탈로그를 놓고 가라고 했다. 카탈로그를 두고 가라고 한 것은 내가 아는 몇 군데에 전화를 해서 혹시 카탈로그에 있는 물품을 사줄만한 곳을 알아 볼 요량으로 그런 것이다. 나에게 하나만 꼭 팔 수 있게 해달라고 신신 당부를 하고 사무실을 나가는 김 사장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아픔이 아팠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 날 오후 너무 분주했고, 더욱이 다음날은 부산에 일이 있어 가야 했기 때문에 물건을 사줄 사람을 알아 볼 수가 없었다. 부산에서 일을 마치고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고 있는데 김 종한 형제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혹시 어떤 물품을 구입해 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 알아보지 못했다고 솔직히 이야기를 했다. 그는 거의 울 것 같은 소리로 좀 도와 달라고 애원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서울에 도착하는 대로 사무실에 가서 다시 연락을 하겠다고 했다. 김종한 형제는 오늘 저녁까지 한 가지도 팔지 못하면 이 자리마저 떨어질지 모른다며 전화를 끊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사무실로 돌아와 카탈로그를 다시 꺼냈다. 카탈로그에는 세 가지 물품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정수기, 진공청소기, 그리고 공기청정기였다. 정수기는 이미 물 건너 감 셈이다. 그래서 사무실 간사들에게 진공청소기를 하나 사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진공청소기 중에 가장 싼 것은 30만원 정도했다. 간사들은 그것은 너무 비싸다고 했다. 가까운 곳의 테크노 마트에 가면 10만원만 해도 좋은 것을 산다는 것이다. 그러니 간사들이 모두 비싸다고 하는 진공청소기를 살 수도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