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라비안 나이트

쏘라비안 나이트

쏘라비안 나이트 95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3:22
조회
50
족자비안 나이트를 쓰는 것은 나 자신을 돌아보는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나만의 문제가 아니고 나와 관계가 있었던 주위의 사람들과의 관계를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책을 쓰면서 마음에 걸린 것은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본인들이 모르는 사이에 글이 나가기를 원치 않았다. 그래서 우선 가족들에게 모두 글을 읽도록 부탁을 했다. 거기에는 아내와 관련된 이야기, 딸과 아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모두 그대로 써도 좋겠다는 허락을 받았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인도네시아에서 만난 학생들, 혹은 간사들과의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이었다. 특히 에디 형제에 대한 이야기, 유삭에 관한 이야기, 사라 자매에 관한 이야기 등이 마음에 걸렸다. 사라 자매는 기꺼이 자기 이야기를 사용하라고 말해주었다. 메단에서 교회의 목사로 사역하는 에디 형제는 쿨 하게 허락해 주었다. 내가 조심스럽게 자기 이야기를 책에 써도 되겠느냐고 하자 웃으며 정신 병원에 다녀온 이야기도 쓰라고 오히려 말해주었다.



유삭을 만나서 식사를 하면서 조심스럽게 책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 그리고 이런 저런 내용을 책에 적어도 좋겠느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러나 조금 후에 갑자기 눈이 붉어지더니 이내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눈물을 흘리며 유삭이 나에게 말해준 것이 가슴을 두드렸다.



“빡 손, 나는 빡 손과 가족처럼 지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가족이라는 것이 언제나 좋은 관계만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좋은 때도 있었지만 사실 힘든 때도 많았어요. 특히 내가 간사를 그만 두었을 때 빡 손이 제 손을 그냥 놓아 버린 것 같았어요. 그 후 나는 고생을 많이 했어요. ........”



유삭은 경제적으로도, 또 신앙적으로도 매우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나는 그런 사정을 모르고 있었다. 나는 유삭 형제가 조이 사역을 그만 둔 후 인도네시아를 떠났다. 유삭 형제가 조이 사역을 그만 두게 된 것이 그렇게 순탄한 과정이 아니었음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게 마음속에 힘든 과정을 보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유삭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 앞에서 내가 한 잘못을 이야기 하면 펑펑 우는 형제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몰랐다. 그저 나는 미안했다고, 내가 너무 생각이 짧았다고 사죄 하는 것 밖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나의 사죄는 진심이었다. 하지만 이토록 나 때문에 상처를 받은 형제에게 그 사죄가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전혀 몰랐다. 나의 사죄를 받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각오는 하고 있었다.



그 이 후로 우리의 관계는 다시 좋아졌다. 이제 인도네시아에 가면 유삭 형제를 언제나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것도 족자비안 나이트를 쓰면서 얻게 된 또 다른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