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라비안 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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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라비안 나이트 87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3:20
조회
69
문제는 자카르타의 회사를 통해서 공식적으로 송금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실로 씨의 건물은 이미 해약이 되었다.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도 몰랐다. 도와주기로 한 사람들을 원망할 수도 없었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다른 방법으로라도 송금이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절망감이 뼛속같이 스며들었다.



몇 달을 절망하고 있을 때 인도네시아에 계신 윤종길 장로님이 이메일을 보내셨다. 그 메일이 얼마나 격려가 되었는지 모른다.



“선교사님, 족자의 센터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송원 교회를 통해서 이미 4억을 약속하셨고, 다른 후원자들을 위해서 2억 이상을 허락하셨는데, 우리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뭔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을 하지 않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만약 손 선교사님만 허락하시만 제가 한번 족자에 가서 땅이라도 구입을 해보겠습니다.”



윤 장로님은 자카르타에서 봉재를 하시면서 족자의 조이 사역을 위해서 물심양면으로 후원을 아끼지 않는 분이었다. 그 분이 그렇게 땅을 구입하겠다고 하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마치 천사를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었다.



윤 장로님은 족자를 머다 하지 않고 몇 번 다니셨다. 그리고 드디어 가장 적절한 땅을 한 군데 구하게 되셨다. 그곳은 스뚜란이라고 하는 곳인데 처음 우리가 족자에서 살던 두따와짜나 대학교의 교수 사택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그 당시는 그곳이 모두 사탕수수 밭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그곳을 떠난 후 개발이 되어 완전히 상가 지역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 후 조이 리더들과 의논을 해서 우선 피그 트리라는 회사를 설립해서 일단 작은 비즈니스를 시작하기로 했다. 아직 땅만 있고 우리가 기대하는 건물은 짓지 못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제 서서히 뽕나무 극장의 꿈이 이루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