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라비안 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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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라비안 나이트 88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3:21
조회
56
15장: 반추하는 실천가



한국에 와서 OMF 대표 일을 감당하는 것은 즐거운 일만은 아니었다. 적어도 내게는 여러 가지 면에서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우선 나는 행정가는 아니다. 큰 그림을 보고 달려가기는 하지만 디테일에는 약하다. 사무실에는 다른 선교사 가정이 팀으로 일을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대내외적인 업무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본국에서 사역하는 동안 내게 큰 위로를 주셨다. 그것은 좋은 선교 리더들 사이의 공동체를 허락하셨다는 것이다. 규칙적으로 모임을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꾸준하게 모임을 가질 수 있었다.



우리는 그냥 놀기 위해서 모인 것은 아니다. 우리가 그 동안 현장에서 고민하는 것들을 서로 나누고 다른 사람들과 이런 것들을 공유하자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 우리는 반추하는 실천가 (reflective practitioner)를 자처했다. 우리는 이론가들은 아니지만 선교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회고와 반성을 통해서 돌아보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또 앞으로 어떤 변화들이 일어날 것이며 그것에 우리 선교사들이 어떻게 대처하는 지에 대해서 생각하기 위해서 모였다.



하지만 우리끼리 모이면 언제나 토의만 한 것은 아니다. 웃음도 많았고 서로의 어려움들을 듣고 위로하는 시간도 많았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방콕 포럼과 설악 포럼이었다.



방콕 포럼



방콕 포럼은 2003년에 시작되었다. 그 당신 태국에서 사역하던 강대흥 선교사와 선교한국의 상임위원장으로 섬기던 한철호 선교사 두 사람이 우연한 기회에 공항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던 가운데 선교사들의 문제를 논의하는 포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일 년에 한 번씩 포럼을 하기로 하고 포럼을 준비하는 위원으로 위클리브 성경 번역 선교회에서 섬기는 정민영 선교사, 그리고 내가 함께 하기로 한 것이다.



2003년 4월로 기억되는 어느 날 우리는 방콕에서 모였다. 20명 가량의 선교 현장에서 온 선교사, 선교학 교수, 지역 교회 목사들이 모여서 허심탄회하게 선교 현장의 문제는 무엇이며 어떻게 건강한 선교 현장이 되도록 도울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다각적으로 했다. 많은 이슈들을 제기하고 있던 가운데 한 가지 일이 있었는데 그것이 우리의 생각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방콕 포럼이 진행되는 도중 태국에서 많은 선교사님들을 돕는 아누손 장로님이라는 분이 오셔서 저녁식사를 대접해 주셨다. 그 식사가 마친 자리에서 아누손 장로님과 나눈 대화는 쇼크 그 자체였다.



우리들에게 저녁식사를 마친 후 아누손 장로님께 우리가 물었다.

“한국 선교사들에게 한 말씀을 하신다면 어떤 말씀을 해주시고 싶습니까?”

그러자 그렇게 겸손한 장로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한국 선교사님들 태국에 오셔서 고생들 많이 하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도와 교회 개척에 대해서 우리에게 큰 도전을 주고 계십니다. 하지만 한국 선교사님들 가운데 태국에 왔는데 태국 말도 잘 못하고 태국 문화도 모르고 태국 사람들을 사랑하지도 않는 한국 선교사님들은 누가 한국으로 데리고 가십니까?”

말씀을 듣는 우리는 모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