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라비안 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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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라비안 나이트 90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3:21
조회
56
풀뿌리 선교 모델



설악 포럼이 내게 개인적으로 많은 유익을 주었지만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설악 포럼을 통해서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의 모델을 다시 정리하게 되었다. 고 3 때에 예수님을 믿음 이래로 오랫동안 사도행전을 읽었다.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로 66권의 성경 가운데서 아마 가장 많이 읽은 책은 사도행전일 것이다. 하지만 사도행전을 읽을 때 내가 가지고 있었던 관점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가지고 있던 관점에서 늘 사도행전을 읽었다.



특히 사도 바울에 의해서 선교사 시작되었고, 사도행전 13장의 안디옥 교회가 사도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했으며, 사도 바울에 의해서 로마 전체가 복음화 되었다고 생각하고 사도행전을 읽은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내가 미신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래서 스스로 이런 질문으로부터 하면서 다시 읽어 보게 되었다.



“사도 바울은 선교사였나?”

“성경에 선교사라는 단어가 나오는가?”

“사도 바울을 선교사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불러야 하나.?”

“사도 바울 이외에 선교를 한 사람들은 없는가?”

“안디옥 교회가 과연 사도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한 것인가?”

“로마는 사도 바울에 의해서 복음화가 이루어 진 것인가?”



사도행전을 자세히 연구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긍정적으로 하기 어려웠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더 자세히 다시 보고 또 보게 되었다.

그리고 사도행전에 사도 바울에 의해서 이루어진 선교 말고 흩어진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선교의 모델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설악포럼에서 사도행전에 나타난 풀뿌리 선교 모델에 대해서 발제를 하게 되었다.



그 시작은 사도행전 11장 19절에 나오는 흩어진 사람들에 대한 묵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 1992년 9월 25일 아침의 큐티



그 날 아침도 우리 가족이 살고 있던 스뚜란의 교수 사택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고요하기만 했다. 보통 사람 키의 두 배 정도까지 자란 사탕수수 밭과 족자의 북쪽에 버티고 앉아 늘 담배를 피워대는 할아버지 형상의 므라삐 화산을 바라볼 수 있는 창가에서 나는 매일하는 큐티를 하고 있었다. 사도행전에서 몇 절씩을 묵상하는 것이 당시 내가 하고 있던 큐티였다.



말씀을 읽기 전에 먼저 잠시 주님께 기도를 드렸다. 그날은 다른 날과 조금 다른 기도를 올렸다. 그날 저녁에 몇 명의 학생이 우리 집에 오기로 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에 와서 그토록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슬람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사회 분위기, 또 복음을 전하기에는 교수라는 신분이 부담스러워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