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라비안 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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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라비안 나이트 80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3:19
조회
55
2001년 한국으로 돌아와 장미 아파트의 법적 소유권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할 때부터 하명수 할아버지가 살아 계실 동안 이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랐다. 할아버지는 그 당시만 해도 이미 중풍으로 몸이 불편하신 상태였고 건강이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닌 것 같았다.



만약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반드시 자녀들에게로 상속이 될 것이고 그렇다면 더 복잡한 문제가 되리라 예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더구나 자녀가 국내에만 산다면 문제는 그런대로 간단하겠지만 외국에 산다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하명수 할아버지의 조카사위인 최 회계사라는 분의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분에게 전화를 해서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고 협조를 부탁드렸다. 시간은 좀 걸렸지만 다행히 생각보다 일이 복잡하지는 않았다. 국내에 있는 자녀들은 일찍 상속을 포기한다는 각서를 써주셨고, 해외에 있는 자녀도 결국 어렵지 않게 이 일에 동의를 해 주었다.



그러던 가운데 나는 OMF의 대표 일을 그만 두기로 했다. 사실 대표 혼자 본국 사역을 다 하는 것이 정말 벅찬 일이었다. 행정일뿐 아니라, 멤버들을 보살피는 일, 그리고 교회들을 방문하며 동원사역 하는 일, 국제본부의 국제실행 이사로 섬기는 일 등 너무나 많은 일을 해야만 했다. 저는 그 당시 육신적으로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게다가 내부적으로 제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어느 필드에 있는 멤버와의 싸움, 필드 디렉터와의 싸움, 힘든 일들이 벌어지고 이에 대해서 너무 고민하다가 건강이 점점 악화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간에도 이상이 오고, 당뇨가 재발되고 불면증도 생기고.....



혼자서는 이러한 어려움들을 견딜 수가 없어서 나는 대표 일을 그만 두기로 결정을 했다.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대표직에서 물러난다고 하는 것은 명예스러운 일은 아니다. 실패한 리더로 남을 것이라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당시로는 그렇게 밖에 결정할 수 없었다.



2006년 시니어 선교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저는 정식으로 그만 두기로 하고 새로운 대표를 찾았다. 다행히도 일본에서 교회 사역을 잘 감당하던 김승호 선교사 내외가 대표로 오기로 했다.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그 분들이 장미 아파트로 옮겨 오고 우리는 새로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장미 아파트는 이제 거의 법적인 문제가 해결되어 팔리기만 한다면 새로운 대표가 새로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새로 오는 대표가 이사를 두 번 해야 했다. 우리 가정이야 어차피 이사를 하려고 했던 것이니 언제든 장미 아파트가 팔릴 때까지 있다가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이야기들이 나와 결국 우리는 장미 아파트가 팔릴 때까지라는 조건을 달아 그 동안 지내던 아파트에 계속 머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