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라비안 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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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라비안 나이트 81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3:19
조회
53
2009년 드디어 법적인 문제가 완결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사를 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파트를 복덕방에 팔아달라고 내 놓았다. 그런데 상황이 또 변해 있었다.



2002년도만 해도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가격은 2억 8천만 원 정도로 평가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던 것이 2005년도부터 뛰기 시작을 하는데 '천정부지'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말이었다. 그리고 한 때 최고액으로는 14억까지 올라간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 아파트 값이 제 정신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이렇게 장미 아파트의 가격이 오른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노무현 대통령 재직 말기 전국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 거기에다가 우리가 살고 있는 잠실이라고 하는 특수한 상황이 장미 아파트 가격의 상승을 더 부채질을 했다.



잠실 운동장으로부터 시작해서 올림픽 공원이 있는 잠실벌에는 5층짜리 단층 아파트들이 많았다. 몇 년 전 그 아파트들을 모두 헐어버리고 재건축에 들어갔다. 현재 잠실은 30층짜리 고층 아파트들로 변해버렸다. 아마 5년 전에 잠실을 기억하는 분들은 보시면 놀라실 것이다.



거기에 최근에 허가를 얻은 제2롯데의 신축도 한 몫을 했다고 보인다. 그 당시 공공연히 제2롯데가 세워지면 근처의 아파트들은 1억 원은 오를 것이라고 하는 소리들이 나돌고 있었다.



재건축이 끝나고 잠실의 아파트 시세는 완전히 달라졌다. 2003년만 해도 아파트 평당 천만 원이 안 되던 것이 몇 년 전에는 공공연히 평당 3천만 원을 이야기 한다. 재건축 아파트가 뛰니 근처의 모든 아파트가 뛰기 시작한 것이다. 누가 보아도 버블이다.



장미 아파트의 법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의 말미인 2008년에 미국발 서브 프라임 사태로 집값이 폭락한다는 이야기가 간간히 들려왔다. 그리고 그것이 한국에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만해도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와 관계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의 부동산 경기도 서서히 냉각되기 시작했다.



이제 거래가 완전히 끊어져서 집을 내놓았지만 보러 오는 사람이 없다. 부동산 가격이 더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을 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아파트를 사려고 하지 않고 전세가만 오르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런 결과로 우리는 이사를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언제까지 이곳에 살게 될지 누구도 모른다. 올 해도 내년에는 이사를 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늘 짐을 싸야한다는 마음으로 벌써 몇 년을 살고 있다. 한 때는 본격적으로 이사를 갈 집을 찾아다닌 적도 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가족은 여전히 잠실에서 살고 있다.



이렇게 곧 이사를 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사는 것이 영적으로 도움이 된다.

첫째는 여기가 내 집이 아니라는 것이다. 언제라도 떠날 집이며 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는 그래서 가격이 올라도 기뻐할 필요가 없고 가격이 내려도 슬퍼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OMF 대표를 맡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올 때 어느 곳에 머물지를 몰랐다. 하지만 주님께서 우리 가족에게 교통 좋고 운동하기 좋은 잠실에서 거의 10년을 살도록 허락을 하셨다. 대표를 그만 두고 동원사역에 전념하기로 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던 전환기에 같은 집에서 산다는 것은 나에게 개인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