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라비안 나이트

쏘라비안 나이트

쏘라비안 나이트 64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3:15
조회
55
영화는 그렇게 끝났다. 나는 말만 듣고 너무 대단한 영화라고 생각해서인지 그저 약간의 감동에 젖어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이 비디오를 먼저 보자고 한 아내는 어떻게 느꼈는지 궁금했다. 내 질문에 아내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 "앨리에게 있어서 노아는 하고 싶은 것이고, 론은 해야 하는 것이네."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럴 듯했다. 순간 나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학생사역과 같은 그래스 루트 사역, 즉 바닥에서 하는 사역이고 오엠에프의 대표일은 해야 하는 사역이구나.



한편의 영화를 통해서 비추어 본 나의 정체성은 사무실에 앉아 있는 대표가 아니고 역시 필드에서 뛰는 현장 사역자였다. 대표로서 내가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은 책상에서 하는 이메일, 그리고 회의였다. 5년 전에 했던 취임사를 다시 한 번 들여다보았다.



‘선교’라는 경기장에서 경기를 시작한 지 십 년이 조금 넘어 경기를 즐겁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심판의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습니다. 잘못했기 때문에 퇴장을 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코트를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선수복을 벗고 실전 선수들이 잘하도록 코치하고 격려하는 일을 하라는 말씀에 시기적으로 아직 코트를 떠날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하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또 그런 일에 적격이 아니라고 거절도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거역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역 선수들과 함께 웃고 우는 자리에 입장해야 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이 취임예배가 저로서는 현역 선수 은퇴식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OMF의 한국 선수들이 코트에서 잘 뛰도록 저의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을 위해서 주님께서 저를 불러 내셨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께서 이 자리에 오셔서 한국 OMF의 새로운 출발을 지켜봐주시고 격려해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사랑과 후원 그리고 기도를 부탁드립니다.“다. 대표로 올 때 내가 그렸던 그림은 내 취임사에 잘 나타나 있었다.



나는 뭔가 잘 못된 그림을 보고 온 셈이었다. 만약 그 때 내 취임사를 들은 사람이 그 자리에서 큰 소리로 그것이 대표가 할 일이 아니라고 했었다면 나는 달리 결정했을 지도 모른다.



2006년 족자에 있을 때 지진 속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내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눈앞에 있었는데도...



분명해지는 것은 내가 그들 옆에 가든지 아니면 적어도 상황이 이렇다는 이야기를 해서 사람들을 보내든지 해야 한다. 그런 결정은 다음 사건으로 가속화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