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라비안 나이트

쏘라비안 나이트

쏘라비안 나이트 59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3:14
조회
47
우리는 모두 호텔 주차장에서 1시간 이상을 기다리면서 지진이 멈추는지 아니면 계속 여진이 진행될 지를 지켜보았다. 지진이 꽤 잦아드는 것 같자 다들 아침식사를 했다. 여진은 계속 진행되었고 있었다. 여진이 있을 때마다 우리를 포함한 모든 투숙객들이 호텔 밖으로 나와 주차장에서 초조한 심정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초조하게 기다렸다.



안전 때문에 호텔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대기만 할 수도 없는 어정쩡한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네 그룹으로 나눠 어제 밤에 참관했던 JOY 금요 모임에 대한 소감을 나누었다. 한 시간 정도 소감을 나눈 후 각 그룹에서 나눈 것들을 발표하게 했다. 족자 사역을 지켜본 이들은 하나같이 인도네시아 조이 모임이 열정적인 모임이었고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점심 때가 되어도 여진은 그치지 않았다.



마침 지진이 있던 날 바르카 간사와 야육 간사가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두 사람의 결혼 피로연이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우리는 호텔에서 식사를 하지 않고 결혼식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대신 호텔 측에 점심식사 대신 케이크와 빵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21명의 한국 사람들이 가끔씩 여진으로 흔들리는 거리를 케익과 빵을 들고 걸어가는 광경이 주위의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는 무척 특이해 보였을 것이다.



결혼식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호텔로 돌아왔을 때 많은 관광객들은 이미 호텔을 떠났다. 하지만 우리는 호텔을 떠날 수가 없었다. 우리는 족자에 관광을 하러 온 것이 아니다. 우리는 족자에 세미나를 하러 온 것이었다. 따라서 다른 곳으로 갈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후에는 로모 톰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제 80세가 다 되어가는 노신부님의 족자 조이에 대한 사랑과 젊은이에 대한 사랑은 대단했다. 하지만 그에게서 느낄 수 있는 더 큰 열정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과 사랑이었다. 신부님은 우리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다. 오후에 벌써 사망자의 수가 1,500명이 넘는다고 했다.



저녁식사를 할 때 쯤 되어서 경찰들이 호텔로 와서 호텔 벽에 금이 가서 호텔 건물을 사용하지 말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다고 이야기 했다. 이제 우리가 호텔에 있기로 결정한다고 해도 있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텔레비전으로 피해 상황이 전해졌다. 우선 지진의 강도가 6.7이었고 족자에서 가까운 남쪽 바다가 진앙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 백 명이 이미 사망했고, 시신이 계속 더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