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라비안 나이트

쏘라비안 나이트

쏘라비안 나이트 60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3:14
조회
60
머큐리 호텔은 우리에게 두 가지 옵션을 제시했다. 하나는 솔로라고 하는 도시에 있는 호텔로 이동하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스마랑이라고 하는 도시에 있는 호텔로 우리를 소개시켜주겠다고 했다. 우리가 관광을 목적으로 왔다면 그렇게 다른 도시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조이의 사역을 보러 왔고 조이는 족자에만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족자의 상황은 점점 더 힘들어져 갔다. 해가 지고 어두워졌지만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호텔에는 촛불을 켜기 시작했다. 스마랑으로 갈까 솔로로 갈까 망설이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그렇다! 만약 우리가 움직여야 한다면 내가 알고 있는 호텔로 가자. 쌀라티가에는 라라스 아스리 호텔이 있었다. 그곳은 족자에서 북쪽으로 자동차로 2시간 정도 가는 곳이다.



쌀라티가는 우리 가정이 살았던 곳이기에 지리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쌀라티가의 라라스 아스리 호텔로 가고 싶다고 하자 머큐리 호텔 측에서는 즉시 라라스 아스리 호텔로 전화를 해서 21명의 한국 투숙객을 받을 수 있는지 타진했다. 가능하단다. 저녁 때 그 호텔에서 보내주는 차가 도착하는 대로 이동하게 되었다. 아내가 일 년 전에 예언 했던 예언이 적중했다. 아내는 라라스 아스리 호텔에서 족자 세미나를 하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정말 신기했다.



쌀라티가의 호텔에서 보낸 차들이 저녁 8시가 넘어 도착했다. 지진의 여파로 족자 시내는 전기가 나가고, 주유소를 비롯한 모든 상점들이 철시한 상태여서 저녁식사를 할 만한 곳이 없었다. 머큐리 호텔 측에 부탁할 수도 있었지만, 너무 비싼 가격을 요구해 결국 8시 반에 네 대의 차에 나눠 타고 쌀라티가로 가는 길에 적당한 식당이 보이면 그곳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불빛도 없는 칠흑 같은 밤에 비가 내렸다. 두렵고 지치고 배고 고팠다. 그래도 여진이 계속 되는 족자를 일단 떠나 안전한 곳으로 간다고 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자동차로 한 시간을 가자 끌라뗀이라는 도시가 나왔다. 우리 모두는 너무 배가 고파서 그대로 가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해 차를 돌려 끌라뗀 시내로 들어갔다. 전기는 끊겨서 사람들은 호롱불이나 촛불을 켜고 밖에서 식사들을 했다.



5월은 건기가 시작된다. 그래서 비가 잘 오지 않는다. 그런데 그 날은 저녁에 비마저 내렸다. 그런 상황에 식당들마저 영업을 종료한 상태라 가게를 찾기가 어려웠다. 밤 10시쯤에 겨우 어느 문을 닫은 상가 앞에서 길바닥에 앉아 먹는 음식집을 발견하고 나시 고렝과 미 고렝으로 허기를 달랬다. 그곳만도 감지덕지였다.



식사를 마치고 자동차에 다시 몸을 실었다. 나를 포함한 21명 모두 지치고 처량한 모습들이었다. 하지만 지진으로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의 처지는 우리보다 더 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쌀라티가로 이동을 했다.



팀들은 라라스 아스리 호텔에 도착하자 믿기지 않을 만큼 깨끗하고 아름다운 호텔에 놀란 모양이다. 하지만 너무 지쳐있어서 모든 사람이 즉시 방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우리 모두 그저 하나님이 쉴 곳을 주신 것이 감사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그곳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를 알고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