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라비안 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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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라비안 나이트 47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3:01
조회
49
실버 라이닝



MSI 비전 트립에 참여한 사람들은 중국에서 여러 곳을 방문했다. 특히 쿤밍에서 비행기를 타고 간 리장이라고 하는 곳은 아름다웠는데, 그 옆의 허칭이라고 하는 곳에 MSI 소속의 독일 의사 부부가 사역을 하고 있었다. 이층집 기와집들이 즐비한 동네는 마치 민속촌 같았다.



그곳에서 우리는 다시 우리말로는 중경으로 더 알려진 총칭으로 갔다. ‘금은 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는 책에 나오는 곳이다. 그곳에서 주인공 리가 함께 중국을 탈출하자고 하는 선교사의 말에도 불구하고 자기 조국에 남기로 한다. 그곳에 중국내지 선교회 본부가 있었다. 원래 상해에 있다가 다시 내륙으로 더 옮겨 온 것이다.



그곳에서 공상대학을 방문한 것은 나에게 큰 즐거움이며 동시에 유혹이기도 했다. 대학총장은 적극적으로 내가 그곳에 와서 국제 회계학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심지어 외국 교수가 머물 숙소까지 보여주었다. 나는 그곳에서 잠시 꿈을 꾸어봤다. 한국 OMF 대표일을 마치고 이곳 총칭으로 온다. 그리고 회계학을 가르치면서 다시 족자의 조이 같은 사역을 한다. 그런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다.



스촨 성으로 가서 그곳의 MSI 사역을 또 보았다. 그곳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한 미국 자매를 만났다. 어려운 환경일텐데 전혀 불평 한 마디가 없다. 그리고 제한적이지만 자기에게 그리스도에 대해서 묻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증거하는 가를 조심스럽게 나누었다.



MSI 비전 트립을 하는 동안 나는 계속 해서 패트릭 펑과 한 방을 썼다. 어느 날 우리는 새벽이 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재임용에 관한 이야기였다. 내 임기가 끝나면 무엇을 하려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필드로 가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다.



내가 필드라고 말할 때면 당연히 인도네시아로 가는 것이지만 인도네시아로 돌아가는 것은 두 가지 이유로 쉽지 않아 보였다. 한 가지는 조이 사역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어서 내가 다시 그곳으로 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점이고, 또 하나는 무슬림 사역을 중심으로 필드의 사역이 재구성되면서 내가 전에 했던 것 같은 학생 사역이 더 이상 필드 사역의 중심 사역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중국 MSI 비전 트립을 통해서 하나님이 내게 새로운 문을 열어주는 것 같았다. 특히 총칭의 공상대학교에 갔을 때 수많은 대학생들을 보는 순간 내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학교도 나에 대해서 매우 적극적이었다.



당시 국제 본부에서 파송 국가의 사역을 담당하는 부총재로 섬기고 있던 패트릭 선교사는 내 임기를 잘 못 계산하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2001년에 대표로 정식으로 임명을 받았기 때문에 2006년에 나의 재임용이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그는 계산을 잘 못해서 내가 2000년부터 사역을 시작했고 따라서 재임용은 당연히 2005년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나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가 한 방을 쓰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떤 것은 격려가 되는 말이기도 했지만 어떤 것은 힘들고 그래서 더 이상 대표직을 수행하기 힘들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패트릭 선교사는 나에게 용기를 주는 말을 했다. 사람은 정말 연약한 것 같다. 윗사람이 해준 한 마디에 마음이 그렇게 변하다니.



그는 자신이 볼 때 한국 OMF는 이제 위기를 잘 극복한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영어로 silver lining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내 영어 실력으로는 그 뜻이 무엇인지 몰랐다. 하지만 나는 영어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마치 흐리다가 날이 맑아지려고 할 때 구름 뒤에 해가 있어서 구름 가장이에 은색의 형태가 보이는 것을 말한다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