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 웃고 계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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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장미 아파트 (8)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7-03-13 01:18
조회
66
하지만 장미 아파트는 이제 거의 법적인 문제가 해결되어 팔리기만 한다면 새로운 대표가 새로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새로 오는 대표가 이사를 두 번 해야 했다. 우리 가정이야 어차피 이사를 하려고 했던 것이니 언제든 장미 아파트가 팔릴 때까지 있다가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이야기들이 나와 결국 우리는 장미 아파트가 팔릴 때까지라는 조건을 달아 그 동안 지내던 아파트에 계속 머물기로 했다.

2009년 드디어 법적인 문제가 완결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사를 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파트를 복덕방에 팔아달라고 내 놓았다. 그런데 상황이 또 변해 있었다.

2002년도만 해도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가격은 2억 8천만 원 정도로 평가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던 것이 2005년도부터 뛰기 시작을 하는데 '천정부지'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말이었다. 그리고 한 때 최고액으로는 14억까지 올라간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 아파트 값이 제 정신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장미 아파트의 법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의 말미인 2008년에 미국 발 서브 프라임 사태로 집값이 폭락한다는 이야기가 간간히 들려왔다. 그리고 그것이 한국에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만해도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와 관계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의 부동산 경기도 서서히 냉각되기 시작했다.

이제 거래가 완전히 끊어져서 집을 내놓았지만 보러 오는 사람이 없다. 부동산 가격이 더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을 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아파트를 사려고 하지 않고 전세가만 오르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런 결과로 우리는 이사를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언제까지 이곳에 살게 될지 누구도 몰라 늘 짐을 싸야한다는 마음으로 장미 아파트에서 산 것이 14년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2014년까지 잠실에서 살다가 현재 살고 있는 천호역 근처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OMF 대표를 맡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올 때 어느 곳에 머물지를 몰랐다. 하지만 주님께서 우리 가족에게 교통 좋고 운동하기 좋은 잠실에서 거의 14년을 살도록 허락을 하셨다. 특별히 대표를 그만 두고 동원사역에 전념하기로 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던 전환기에 이사하지 않고 같은 집에서 살 수 있었던 것은 안정적으로 사역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