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 웃고 계시는 하나님

뒤에서 웃고 계시는 하나님

8-4 도레 도레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7-03-07 20:44
조회
87
8-4 도레 도레

호세는 인도네시아에서 바이올린을 배웠다. 전공을 하겠다는 생각은 아니었고, 취미로 부담없이 배우기로 했다. 인도네시아 음악 선생님들은 모두 유순하다. 그래서 바이올린을 배우려는 아이들에게 억세게 훈련을 시키지는 않는다. 호세가 레슨을 받는 것을 보았는데, 장난을 하는 것인지, 레슨을 하는 것인지 모를 때가 많았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호세는 바이올린 연습곡 스즈끼 1, 2, 3을 마치고 어느덧 볼륨 4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본국사역으로 한국으로 올 때 호세는 바이올린과 연습곡 악보를 가지고 왔다.

한국에 와 보니 방학이라고 해도 다위나 호세 또래의 아이들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모두 자율학습을 하러 학교에 가기 때문이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방학은 방학이다. 호세가 늘 말하는 대로 학교에서 공부를 다 했으니 방학을 한 것이지, 만약 공부를 할 것이라면 왜 방학을 하냐는 것이다. 그의 지론이 타당하다. 호세는 가족 휴가 갈 때 내가 일거리를 가지고 가는 것도 이해를 하지 못했다.

한국에 와서 아이들이 한 것은 교회 근처 집사님이 하는 음악 학원에 다녔다. 다위는 피아노를 연습하고 호세는 바이올린을 연습했다. 우리야 아이들이 음악을 전공할 것도 아니고 솔직히 말하면 너무나 집에서 빈둥빈둥 노는 것이 좀 보기 딱해서 과외 활동이라고 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큰 압력을 행사하지도 않고 자기들이 하는 만큼 하게 두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우연히 길에서 예전에 가깝게 지내던 신동렬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분과는 아주 오래 전에 같은 교회를 다녔는데, 그 당시 신 선생님은 수원 시향의 수석 바이올린 주자였다. 그러니 수원에서 바이얼린을 가장 잘 연주하는 분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신 선생님은 그 후 여러 나라에서 유학을 한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안산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인도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가 서로 알고 지내던 때는 다위 호세가 아주 어린 아기였을 때였다. 그는 자연스럽게 우리 가족의 안부를 물었다. 그래서 가족들 이야기를 하다가 호세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호세가 바이올린을 연습한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러자 신 선생님은 자기가 호세에게 바이얼린 레슨을 좀 해 주고 싶다고 했다.

신 선생님이 호세에게 바이얼린 레슨을 해주신다는 것은 우리에게야 황송한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신 선생님 같이 지명도가 있는 바이얼린의 대가가 호세에게 시간을 내어 레슨을 해 주겠다는 것은 정말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래서 호세와 함께 신 선생님을 방문했다.

기저귀를 차고 다닐 때 보았던 호세가 이제 십대의 학생이 되어 나타난 것이 아마 신 선생님에게는 무척 신기했던 것 같다. 한참 동안 부드러운 얼굴로 호세는 바라보다가 호세에게 스즈끼 볼륨 4의 곡 하나를 연주해 보라고 했다. 호세는 약간 긴장한 얼굴로 하지만 최선을 다해 바이얼린을 연주했다.

호세가 연주를 하고 나자 신 선생님은 책을 치우더니 백지를 한 장을 꺼내서 그 위에 오선을 그렸다. 그리고 그 위에 도와 레를 그려 넣었다. 그리고 호세의 손가락을 바이올린 위에 정확한 위치를 잡도록 도와주고 도와 레를 계속 연습하게 했다. 신 선생님은 거의 한 시간을 호세에게 도와 레를 연주하는 연습을 시켰다.

그리고 집에 호세에게 집으로 돌아가서 일주일 동안 내내 도와 레를 연습하고 다시 오라고 했다. 그 집을 나서며 호세는 입이 병어만큼 나와 가지고 이곳에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그래도 좋은 기회니 레슨을 더 받아보자고 했지만 호세의 의지가 워낙 완강해서 더 이상 설득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호세는 집근처의 음악학원에는 계속 가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