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 웃고 계시는 하나님

뒤에서 웃고 계시는 하나님

6-4 톰 신부님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7-02-25 17:53
조회
57
6-4 톰 신부님

족자에 있을 때 여러 사람을 알게 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톰 야콥스’라는 신부님을 잊을 수 없다. 신부님은 인도네시아에서 50년 동안 예수회의 선교사로 섬겼던 분이다. 신부님은 족자의 가톨릭 대학에서 교수로 오랫동안 강의를 했던 분이지만 개신교에서도 신부님의 학문적 깊이와 인품을 인정받아 두따와짜나 대학교 신학부에서도 강의를 하고 있었다.

두따와짜나 신학대학교 신학부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된 숨바라는 섬 출신의 난다 자매 때문에 톰 신부님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난다는 늘 톰 신부님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톰 신부님이 난다의 졸업논문을 지도하게 되어 자주 만나면서 난다를 통해 톰 신부님도 자연스럽게 죠이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톰 신부님은 네덜란드 사람으로 나이 20살의 약관의 나이로 죡자에 와서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와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위해 다 보내신 분이다. 신부님은 겸손하면서도 얼마나 실력이 있는 분인지 모른다. 가끔식 하는 조크와 위트도 잊을 수가 없다.

톰 신부님은 자신의 모국어인 네덜란드어, 인도네시아어는 물론이고,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독일어, 영어, 자바어, 동티모르에서 사용하는 께똑어, 등 10 개의 언어를 구사하는 분이었다. 톰 신부님이 이렇게 많은 언어를 할 줄 안다고 했을 때 그럼 못하는 말이 없지 않느냐고 하자, 웃으시며 한국말은 못한다고 하셨다. 그는 50 년간 인도네시아에서 섬기면서 신학에 관한 책을 20 권이나 인도네시아어로 저술하였다.

톰 신부님은 처음에 인도네시아에 왔을 때 1950년이었다고 했다. 그 때는 1945년부터 1950년까지 무려 5년 동안 벌어진 인도네시아와 네덜란드 연합군과의 전쟁이 종식된 해였는데, 전쟁의 상흔으로 네덜란드에 쉽게 갈 수 없었다고 했다. 족자에서 자바아어와 인도네시아 어만 사용하던 톰 신부님이 드디어 재입국 비자가 나와 고향을 방문했을 때 가족들은 왜 네덜란드 어를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하느냐고 놀림을 받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아마도 신부님이 처음에 인도네시아에 왔을 때는 교수를 할 것으로 생각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이전에는 인도네시아에서 신부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네덜란드에 가서 신학을 공부한 것 같다. 하지만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하고 나서 인도네시아 가톨릭 교회는 인도네시아 안에 신학교를 짓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인도네시아 가톨릭 신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칠 사람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톰 신부님이 로마에 가서 신학을 배우기로 했던 모양이다.

톰 신부님은 60년대 초반에 로마에 가서 성경를 공부하게 되는데, 로마에서 성경을 읽다가 주님을 만났다고 내게 말해주었다. 신부님이 로마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 가톨릭에서는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즉 1965년의 바티칸 공회인데, 그 공회에서 영향을 깊이 받은 톰 신부님은 인도네시아로 돌아와 바티칸 공회에서 천명한 다섯 가지의 원칙의 전도사가 되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성경으로 돌아가자" (Back to the Bible) 라는 케츠프레이즈의 전도사가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