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 웃고 계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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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대통령의 편지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7-02-15 22:12
조회
73
4-2. 대통령의 편지

우리 가족이 반둥에서 머물던 어느 날 언어 학교 교정으로 들어섰을 때 우편함 앞에 여러 명의 한국 선교사들이 모여 웅성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 중 한 사람이 편지 한 통을 가져와서 한국에서 대통령이 편지를 나에게 보냈다고 흥분하며 건네주었다. 정말 봉투에 적힌 수신인은 손창남이었고 발신인은 주소도 없이 단지 ‘노태우’라고 적혀 있는 것이었다. 누가 보아도 노태우 대통령이 발신인인 편지였다. 하지만 나는 노태우 대통령이 내게 편지를 보냈을 리는 없고 누군가가 장난을 쳤겠거니 하고 봉투를 뜯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봉투를 뜯어보았더니 역시 개구장이 대니얼이 장난을 친 것이었다.

대니얼에 대해서 들은 것은 내가 목동에 있는 해외선교훈련원에서 선교훈련을 받고 있을 때였다. 해외 선교훈련원에는 당시 훈련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기 위해서 정기적으로 오는 원어민들이 몇 명이 있었다. 하지만 전임으로 영어를 돕는 원어민은 없었다. 그런데 드디어 대니얼 홈버그라는 미국 선교사가 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더 재미있는 것은 그가 OMF 선교사이며 우리와 같은 기간에 싱가포르에서 신임 선교사 오리엔테이션을 받게 될 것이라는 소식이었다. 싱가포르에서 대니얼을 만나자마자 그가 정말 재미있는 친구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신장이 190 센티미터에 몸무게도 90킬로그램은 충분히 나갈 거구의 대니얼 홈버그는 시카고에 있는 휘튼 대학교에서 공부할 때 한국에 선교사로 가기로 결심했다. 아마도 함께 공부한 한국 학생들과의 우정이 그런 결정에 큰 영향을 끼친 것 같다. 한국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런 덕분이겠지만 그는 한국 사람들이 하는 아주 진한 농담도 잘 했다. 우리는 그와 싱가포르에서 좋은 친구가 되었다. 대니얼은 한국에서 언어를 배우기 전 벌써 많은 한국말 어휘를 알고 있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나 할 수 있는 비어나 속어도 많이 알고 있었다.

한번은 싱가포르에 있을 때 오리엔테이션 코스에 참석하는 신임 선교사들과 카드놀이를 한 적이 있었다. 대니얼이 나에게 카드를 줄 때 한 장이 실수로 펴졌다. 물론 대니얼이 일부러 카드를 펴준 것이 아니라 실수였음을 알고 있었고 나에게 무척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쏘리!’라고 말했다. 하지만 카드가 펴져서 내게 오면 불리한 게임이었다. 내가 카드를 돌릴 때가 되었을 때 장난기가 발동해서 나는 일부러 대니얼에게 카드 패 하나를 일부러 펴서 주었다. 대니얼의 반응을 보고 싶었다. 대니얼은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자식이!" 하는 것이었다. 나는 정말 놀랐다.

그래서 한국에 가서 써먹을 만한 표현이 있다며 가르쳐주었다. 만약 정말 예쁜 여자가 있으면 “잘 났어요, 정말!” 이렇게 말하라고 가르쳐주었다. 아마도 한국에서 여러 번 그 표현 때문에 곤욕을 치룬 것 같았다. 특히 해외선교훈련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던 민명홍 선생님께 “민 선생님, 잘 났어 정말!” 이라고 했단다.

대니얼은 유머 감각이 대단했다. 늘 만나면 조크를 했다. 하루는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데 나에게 슬픈 얼굴로 다가왔다. “야, 창남,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내가 와이프랑 심하게 싸웠어. 그래서 한 달 동안 서로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했어.” 얼른 내가 대답을 해주었다. “아, 그럼 기분이 별로 좋지 않겠네!” “아, 그게 아니고, 오늘이 그 한 달의 마지막 날이라 그래!” 대니얼의 조크는 모든 강의가 영어로 진행되는 국제본부 오리엔테이션의 힘든 하루의 활력이 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