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 웃고 계시는 하나님

뒤에서 웃고 계시는 하나님

4-1. 피전홀의 편지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7-02-16 06:02
조회
67
4-1. 피전홀의 편지

반둥에 도착해서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재정적인 어려움에 봉착했다. 원래 오엠에프는 초등학교의 학년에 해당하는 자녀들을 위해서 말레이지아에 치푸 스쿨이라는 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 학교는 원래 중국 내지 선교회 때부터 중국 산둥성에 위치했었던 학교로서 중국내지에서 사역하던 선배 선교사들의 자녀들을 모아서 교육해 줌으로 안정적인 사역을 할 수 있었고, 헌신된 선교사의 학업과 신앙에 대한 지도로 좋은 학교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1950년 중국 공산혁명으로 선교사들이 모두 중국에서 나와 동아시아에서 사역하게 되면서 우리 단체의 이름을 중국내지선교회에서 오엠에프로 이름을 바꾼 다음, 자녀교육을 위해 말레이지아 고원에 있는 카메룬 하이랜드라는 휴양지에 땅을 사서 치푸라는 이름으로 초등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는 1990년에 싱가폴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치푸 스쿨에 우리 딸아이를 보내려고 생각했다. 그래서 카메룬 하이랜드에 있는 치푸 스쿨을 방문했다. 열대우림이라도 지내다 높아 일 년 내내 우리나라의 가을 같은 날씨는 환상적이었다. 하지만 이제 여덟살이 딸 아이를 이곳에 두고 간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딸 다위는 엄마 아빠와 함께 있겠다고 말했다. 그런 아이를 치푸 스쿨에 두고 우리만 인도네시아에 가서 지내는 것이 아이에게 너무 힘들었다.

또 한 가지 어렵게 생각된 점은 한국에서부터 우리 아이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분명한 아이로 키우기로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집에서 부모가 데리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침 반둥의 언어 학교 옆에 좋은 ‘씨앤엠에이 C&MA“ 선교사들이 시작한 초등학생을 위한 선교사 자녀학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됨에 따라 아이들을 인도네시아로 데리고 가기로 했다.

문제는 당시 오엠에프의 재정에 관한 자세한 규정을 잘 몰랐다. 모든 OMF 재정지출은 핸드북에 의해서 결정되는데 나는 그 핸드북을 읽지 못했다. 우리의 후원금이 모두 OMF로 들어가고 있으니 그저 필요한 경비에 대해서는 오엠에프가 공급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상식 수준의 생각만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를 반둥에 있는 학교를 보내기로 하고 인도네시아 필드 리더에게 다위의 학비를 전부 또는 일부 오엠에프로부터 받을 수 있냐고 했더니, 분명하게 "Have you read OMF handbook?" 하는 것이었다. 너 OMF 핸드북 읽어본 적 있냐? 그것은 단지 내가 그 규정을 아느냐는 것이라기보다는 no라는 말을 우회적으로 한 것이었다. 나는 필드 리더의 대답이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우리의 헌금은 모두 오엠에프로 들어가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우리의 아이는 어떻게 교육을 시키란 말인가.

그러면서 필드 리더는 내가 곧 비자 때문에 싱가폴에 갈 예정이니 국제 본부의 재정담당자에게 문의를 해 보라고 했다.

다행히 그 다음 주에 비자를 받기 위해서 싱가포르로 가야만 했다. 그래서 국제 본부의 재정 담당자에게 우리의 사정을 이야기 했다. 그랬더니 그 재정담당자는 "Have you read OMF Handbook?" 하는 것 이었다. 인도네시아 리더와 어쩌면 한 마디도 틀리지 않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절망했다.

내가 전부를 부담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 아이가 인도네시아에서 말레이시아까지 비행기를 타야 하는 비용, 이런 변동비용만 해도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을 했다. 그러자 그 재정 담당자는 우리는 오엠에프 멤버들이 치푸 이외의 다른 학교에 보내는 것을 반대하기 때문에 재정 지원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가 막혔다. 앞이 노랗게 되는 것 같았다. 이제 다위는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가는 것인데, 계속 어떻게 이 학비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인가. 우리는 생활비를 줄여서 아이들 학비를 댈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반둥에서 온 가족이 한 달에 약 500불 정도의 생활비를 오엠에프 선교부로부터 받아서 생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