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 웃고 계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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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양평의 목욕탕 (2)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7-02-05 23:08
조회
445
우리는 모두 가방에 비누와 샴푸, 수건을 싸 가지고 한 보따리씩 들고 버스 정거장으로 나갔다. 추운 날씨였지만 햇볕이 따뜻했다. 버스에 40명가량의 장정이 올라타자 버스는 초만원이었다. 양평으로 가는 학생들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운 천사들 같았다. 이미 말씀으로 충만했고, 그 허술한 숙소에서 샤워도 하지 못하고 지내다가 목욕을 한다는 생각만 해도 행복해 하는 그 얼굴들을 보고 있노라니 기쁜 마음뿐이었다.

운전기사로부터 양평시장 가까운 곳에 목욕탕이 있다는 말만 듣고 양평시장 근처 정거장에 일단 하차를 했다. 우리는 여호수아가 여리고에서 한 것처럼 두 명의 척후병을 골라서 가까운 곳에 목욕탕이 정말 있는지, 있다면 목욕탕이 우리 40명이 모두 들어가기에 적당한지를 알아오게 했다. 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불할 금액이었다. 워낙 어려운 학생들이라 수양회 참석 회비로 그저 식사만 해결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목욕요금이 비싸다면 그냥 돌아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요즘 말로 네고까지 하고 오라고 미션을 주었다. 우선 40명이라는 단체손님이고, 선머슴들이니 목욕을 오래 할 리 없으니 딱 한 시간만 할 테니 돈을 깎아 줄 수 있는지를 물어 보고 오게 했던 것이다.

우리가 보낸 척후병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 목욕탕이 있다고 하는 곳으로 쏜살같이 사라지더니 어느새 벌써 숨을 헐떡거리며 돌아 왔다. 그들은 미션을 아주 훌륭하게 마치고 돌아왔다. 척후병의 보고에 의하면 가까운 곳에 아주 넓은 목욕탕이 있으며, 주인아주머니가 대학생들이 40명이 와서 한 시간만 한다고 했더니 아주 좋아하면서 50%를 깎아 주겠다고 했단다. 아이들의 얼굴은 더욱 밝아졌다. 목욕탕으로 향하는 발걸음들이 더 종종 걸음이 되었다. 우리 손에는 까만 비누화 샴푸와 수건이 가득 든 오리가방이 들려 있었다.

목욕탕으로 가려면 버스 정거장에서 양평 경찰서를 향하려 직선거리로 약 300미터 정도를 가다가 좌측으로 돌아서 약 100미터 정도를 더 가면 된다. 양평 경찰서에는 두 명의 초병이 집총을 하고 경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목욕탕을 향해서 가고 있는데, 멀리 초병 두 명이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한 명이 막사 안으로 급하게 들어갔다. 그리고 네 명의 초병을 더 데리고 나와서 경비를 강화했다. 우리는 무슨 영문인지를 몰랐다.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 옆의 목욕탕으로 유유히 들어갔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그 날이 노태우 대통령 후보가 양평에 와서 읍내 유세를 하는 날이었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대도시에서는 대학생들이 가방에 화염병을 들고 와서 경찰서에 투척을 하곤 하는데, 그날 우리가 들고 간 가방에 뭐가 있는 지도 모르고 우리의 목적이 경찰서에 방화를 하거나 대통령 선거 유세를 방해하려는 불순한 세력이 아님을 모르는 불쌍한 경찰들이 초병을 증가시키며 긴장했을 것을 생각하니 정말 재미있다.

우리는 목욕을 하고 양평시장에서 순대와 떡볶기 등으로 배를 불리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로마서 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