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선교

문화와 선교

문화와 선교 74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3:45
조회
81
● 미드나이트 이야기

인도네시아에서 사역할 때 두따와짜나 대학에서 교수 사택을 허락해주었다. 교수 사택은 스뚜란이라고 하는 곳에 있었는데 끝없이 펼쳐진 사탕수수 밭 한 가운데에 교수 사택이 있었다. 스뚜란에는 이웃이 많지는 않았다. 그러나 빡 야리라고 하는 무슬림이 살고 있었다. 그 집은 개 늘 길렀다. 보통 이슬람교도들은 개를 만지지도 않는다. 따라서 개를 기르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내 추측대로라면 우리가 있는 동네가 외져서 낯선 사람들이 지나갈 때 짖으라고 개를 기르는 것 같다.



문제는 빡 야리의 집에 개집도 없고 개 밥그릇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유를 물어 보았더니 개를 그냥 놓아기른다는 것이다. 개는 가끔씩 다른 동네에 가면 구박을 받고 독극물에 목숨을 잃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그러면 어디서 데려 왔는지 또 다른 강아지를 한 마리 기른다. 재미있는 것은 강아지가 아무리 많이 바뀌어도 이름은 언제나 몰리였다. 몰리라는 말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 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몰리는 우리식으로 하면 ‘멍멍이’처럼 아주 흔한 개 이름이다.



어느 날 그 집에 새로운 개가 생겼다. 이 전에 보았던 개에 비해서 정말 못생긴 강아지였다. 특별히 나는 그 개의 피부색깔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개의 색깔이 하얀색, 회색, 검은 색이 지저분하게 섞여 있었다. 아마 흰 개가 연탄 공장에 가서 조금 놀다 나오면 그런 색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그 개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져 버렸다. 주인이 그 강아지도 몰리라고 부르자 아이들은 정말 항일투사와 같은 표정으로 그 이름이 이 개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자기들은 미드나이트라고 부르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 개는 빡 야리의 집에서는 몰리로 우리 집에서는 미드나이트로 불리게 되었다.



다위와 호세는 학교 갔다 돌아오면 책가방을 방에 던져놓고는 밖으로 나가 “미드나이트!” 하고 불렀다. 그러면 미드나이트는 어디에 있던지 만주 벌판을 달리는 말발굽 소리를 내며 달려 왔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몸을 굴리라고 하면 굴리고, 아이들이 하자는 대로 따라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미드나이트는 이웃 빡 야기의 개인데 어떻게 우리 아이들의 말을 잘 들을까. 우연히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저녁식사를 하는 자라에서 아이들은 국에 있는 고기를모두 건져 손에 들고 엄마가 부엌으로 들어가는 동안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 미드나이트를 불렀다. 그러면 미드나이트가 어디선가 달려와 다위와 호세가 던져 주는 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우리 아이들과 미드나이트는 갈수록 친해 졌다.



아이들과 반대로 나는 미드나이트가 전혀 예쁘지 않았다. 내가 그 개를 싫어한 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에서였다. 당시 우리 집에 잔디를 예쁘게 심어놓았는데 미드나이트가 우리 집에 오면 아무데서나 실례를 했다. 그러면 그 부위의 잔디는 누렇게 죽어버렸다.



미드나이트가 나타나기만 하면 나는 작은 돌멩이를 집어 그 앞에 던졌다. 다위와 호세가 있을 때 미드나이트에게 돌을 던졌다가는 큰일 난다. 그래서 다위와 호세를 보기 위해서 미드나이트가 찾아오는 경우는 살그머니 주머니나 보이지 않게 주먹 속에 돌을 넣었다가 우리 아이들이 보지 않을 때 몰래 몰래 미드나이트에게 던지곤 했다.



어느 날 아침 아내와 아침 산책을 나가기 위해서 문을 열었다. 멀리서 미드나이트가 만주벌판을 달리듯 갑자기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아직 어둑어둑한 새벽에 우리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우리가 다위와 호세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순간 미드나이트는 고개를 휙 돌리더니 유유히 왔던 길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개에게 외면당하는 것도 충분히 불쾌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개도 이렇게 반응을 한다면 우리가 섬기는 현지인들은 우리를 얼마나 더 잘 알까. 우리가 그들에게 ‘우리는 여러분을 섬기러 왔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기 전에 그들은 우리에 대해서 이미 알고 우리를 대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