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라비안 나이트

쏘라비안 나이트

쏘라비안 나이트 24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2:55
조회
67
4장: 오엠에프



아침 식사를 마치고 집을 출발해서 잠실 대교를 건넌다. 마침 동쪽으로 떠오르는 태양이 눈을 부시게 하고 햇살에 비치는 잔잔한 은빛의 물결을 바라보면 마음의 모든 근심이 사라진다. 저녁에도 정시에만 퇴근하면 다시 서쪽으로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퇴근을 할 수 있다. 이렇게 한강을 건너다니는 것은 내가 대학을 다니던 1970년대 이후 처음이다. 그렇게 한강을 건너다니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모른다.



우리가 사는 장미 아파트는 송파구 잠실6동에 있고 OMF 사무실은 광진구에 있는 동서울터미널 바로 옆에 있었다. 한강을 두고 우리 집은 남쪽에 그리고 사무실은 북쪽에 있는 격이 되었다. 잠실 대교를 건너 조금 더 간 후 동서울 터미널 방향으로 우회전을 한 후 작은 언덕 하나를 넘어가면 동서울 터미널 호텔 앞에 사무실이 있었다.



그 사무실에 도착하는 순간 한강의 아름다움은 사라진다. 그리고 골을 지끈지끈 하게 만드는 일거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무실의 내 방에서 몇 가지 복잡한 일을 처리하고 나와서 늘 큰 소리로 외치는 소리가 있었다. “아, 미치겠다!” 그리고 나는 거의 미치는 줄 알았다.



수지가 안 맞는 사무실



처음 대표로 임명을 받았을 때는 OMF 사무실은 수지에 있었다. 원래 사무실은 서울 서초구 사랑의 교회 교육관에 있었다. 적어도 내가 인도네시아로 파송 될 때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97년에 전임자는 사무실을 수지로 옮겼다.



전임자가 사무실을 서울에서 수지로 옮긴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지 사무실에는 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곳을 후보자들을 위한 훈련 장소로 사용하는 것도 어려웠다. 당시 한국 OMF의 상황은 새로운 후보자들을 발굴해서 내보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허술한 스크리닝을 통해서 보낸 선교사들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더 정신을 쏟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람을 선교지로 보내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제대로 된 사람을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결국 사무실을 다시 수지에서 서울로 옮기기로 했다. 마침 수지 사무실이 있는 건물은 어떤 교회에서 구입을 하기로 해서 어렵지 않게 매각이 되었다. 서울 사무실 장소가 문제였다. 아무래도 사람들의 접근성을 생각하면 2호선 역세권이어야 할 것이라고 결론을 내고 여러 곳을 찾아다녔다. 서초역 근처, 강남역 근처, 사당역 근처... 하지만 우리에게 적합한 장소는 마땅히 나오지 않았다.



어느 날 다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갈 일이 있었는데 이호덕 장로님과 대화를 하는 중에 우리가 사무실을 찾고 있다는 말씀을 드렸다. 이 장로님은 당신의 사무실 앞에 있는 건물에 빈 공간이 있는 것 같다며 서울의 비서에게 전화를 해서 알려달라고 했다. 당시 호주 출신의 마금경 선교사에게 부탁해서 그 장소를 보고 오도록 부탁을 했다.



의사출신의 마 선교사는 매우 상세하게 그 사무실 자리에 대해서 보고서를 만들어 보냈다. 100점 만점에 95점은 되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2호선인 동서울 터미널 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었고, 은행, 음식점, 특히 테크노 마트가 있어서 모든 것이 편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