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라비안 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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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라비안 나이트 25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2:56
조회
61
어려움들: 후원자



첫째는 후원자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었다. OMF는 1980년 시작할 때 비교적 순탄하게 시작했다. 당시는 한국 교회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하영조 목사님, 옥한음 목사님, 홍정길 목사님이 모두 한국 OMF의 이사였다. 심지어 90년 중반만 해도 국제 OMF에 보내는 우리의 후원금이 100%를 넘어서 어떤 때는 120%까지 보낸 적이 있었다고 한다. 사무실로 교회나 개인이 전화를 해서 OMF 후원자가 되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도 적이 않았다.



이렇게 좋은 후원자들을 많이 가지게 되었던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당시는 선교단체들도 많지 않았고, 또 이미 1969년부터 한국 필드에 와 있던 OMF 외국 선교사들이 좋은 명성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OMF는 이런 저런 이유로 명성을 읽고 있었다. 마음을 돌린 후원자들의 마음을 다시 얻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싱가포르에 회의차 갔다가 마침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는 말레이시아 OMF 50주년 기념 및 이사장 이취임식에 참석을 보기 위해서 말레이시아를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그곳에서는 당시 안식년으로 한국에 와서 본국 사역을 돕던 김종명 선교사도 함께 했다.



큰 중국계 식당을 빌어서 모임을 했는데, 참석한 사람들은 어림잡아 400명가량 되어 보였다. 나도 어느 테이블에 앉아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식사하면서 옆에 있는 분들과 대화를 했다. 대부분이 OMF 후원자들이라고 말을 했다. 언제 후원자가 되었느냐고 물었다. 대부분 자기 부모님 때부터 혹은 심지어 조부모님 때부터 후원을 해왔다고 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 분들은 모두 자신들이 OMF 후원자가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만약 한국 OMF에 이런 충성스러운 후원자들이 400명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OMF 행사에 자기 일처럼 참석해줄 수 있는 분들이 있다면 OMF는 안정되게 일을 해나가지 않을까. 모임에 참석하는 내내 내 생각은 어떻게 한국 OMF를 그런 단체로 만들 수 있을까로 가득 찼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하지만 주님이 내 마음에 새로운 소망을 주셨다.



이런 것을 비전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OMF의 후원자가 되는 것이 자랑스러운 단체를 만드는 것, 이것이 그 때부터 내 비전이 되었다. 돌아오면서 함께 한 김종명 선교사에게 이런 소박한 비전을 나누었다.

“김 선교사님, 오늘 저녁 모임을 보면서 나는 비전을 갖게 되었어요. 한국 OMF의 후원자가 되는 것이 자랑스러워지도록 모임을 만들고 싶어요.”



이것은 내게 아주 새로운 일만은 아니었다. 그러면서 족자에서 있었던 경험을 김 선교사에게 나누었다. 사실 그 경험은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자랑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그 이야기를 김 선교사에게 들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