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 웃고 계시는 하나님

뒤에서 웃고 계시는 하나님

5-3 스뚜란의 천사 (3)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7-02-20 06:47
조회
58
당시에 나는 당뇨 증세가 있어서 혈당치가 매우 높았다. 그래서 식사를 거르면 안 되고 식후에는 반드시 약을 복용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이는 아버지가 돌아 가셔서 경황이 없어서 그랬는지 아침식사를 하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당뇨약을 먹기 위해 부친상을 당해 정신없는 이이에게 아침 먹으러 가자고 말하기가 거북해서 결국 아침밥을 거르고 나니 몸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이이에게 내 상태를 이야기했다. 이이는 아침식사를 챙기지 못한 것에 대해서 몹시 미안해했다.

이이의 고향인 쁘깔롱안이라고 하는 도시는 이미 여러 번 방문한 바 있었다. 그 때마다 이이는 나나 우리 가족을 극진하게 대접했다. 쁘깔롱안에서 해물 가장 잘 하는 집, 아니면 국밥 제일 잘하는 집 등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이이는 상주로 장례에 집중해야 했다. 그래서 이이와 나는 집근처의 식당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곤 했다. 오후에는 평소에 이이와 친한 두 명의 친구가 죡자에서 쁘깔롱안까지 문상을 왔다.

죡자에서 온 ‘헨드리’와 ‘아셉’도 저녁에 열리는 가족 예배에 참석하기로 했다. 점심식사를 하고 나서 이이는 “오늘 저녁 예배는 반 일곱 시에 시작됩니다.”라고 내게 알려주었다. 인도네시아 사람이 “반 일곱 시”라고 하면 그것은 여섯시 반을 의미한다. 그런 방식으로 시간을 말하는 것이 처음에는 매우 이상했지만 몇 년이 지나자 나에게도 익숙한 인도네시아의 관습이 되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반 일곱 시”라고 한 것을 “일곱 시 반”이라고 착각을 했다.

4시가 되자 이이는 자기 집에 가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오자고 제안을 했다. 이이 집에는 샤워를 할 수 있는 화장실이 하나 밖에 없었다. 샤워를 해야 할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족자에서 온 두 명의 친구까지 모두 세 명이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아무리 급해도 다른 사람과 샤워를 함께 하지는 않는다. 우리 모두가 샤워를 끝냈을 때는 벌써 6시가 다 되었다. 이이는 서둘러서 장례식장으로 가려고 했다. 내가 정시에 식사를 하고 당뇨 예방약을 먹어야 한다고 하자 이이는 가까운 곳에서 저녁식사를 하자며 어느 식당으로 안내를 했다. 나는 이이를 위로할 겸 계속 말을 하면서 밥을 천천히 먹었다.

이이는 한 술에 음식을 먹어 치우고는 초조한 듯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부모가 모두 돌아 가셨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생각하면서 오히려 이이를 즐겁게 해 준다고 농담을 하면서 아주 천천히 음식을 먹었다. 이이는 6시 반이 되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교수님, 예배가 반 일곱 시입니다.“ 하고 나를 재촉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이 그 날은 이이가 “반 일곱 시입니다.”라고 말하는데도 내 머리 속에는 7시 반으로만 들렸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이가 이렇게 보채는 것이 부모를 잃은 시름 때문에 그러려니 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나는 오히려 식사를 더 천천히 하면서 실없는 말을 하면서 시간을 끌었다.

7시가 되어서야 식당에서 나오게 되었다. 차에 오르자마자 이이는 미친 듯이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평소에도 이이는 차를 빨리 몰았다. 하지만 그 날 차를 모는 것은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이가 그 날따라 정말 거칠게 차를 모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는 7시 15분가량 되었고 이이 아버지의 관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

나는 예배 전에 준비 찬송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예배가 다 끝나고 마지막으로 부르는 찬양이었다. 가족들은 이이가 오지 않자 기다리다 못해서 이이 없이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이이는 독자였다. 그러니 삼촌이나 고모들이 이이가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을까는 생각하니 정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내가 이이의 집을 찾아 간 것은 그를 위로하기 위해서였는데, 정말 어처구니 실수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고야 말았다.

감사하게도 이이와는 이 사건으로 더욱 친밀해 지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