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선교

문화와 선교

문화와 선교 51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3:40
조회
87
크리스마스의 메시지:

이렇게 인도네시아에서 교수 사역을 하던 초기 언어 때문에 그리고 사역을 할 수 없다고 하는 자괴감 등으로 갈등을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어린 아기로 오셨다고 하는 성육신의 이야기가 큰 위로가 되었다.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어린 아이로 오셨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메시지다. 아무리 똑똑한 아이들도 아이들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렇게 제약을 가진 어린 아이로 오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만약 사역의 효과만을 생각했다면 어른으로, 그것도 수퍼맨차람 오셨어야 한다. 그러면 도착하신 날부터 할 수 있는 일이 많으셨을 것이다. 예를 들어 상암 축구 경기장에 10만 명을 모아 병을 고쳤다면 예수님은 당장 메스미디어의 주목을 받으셨을 것이다. 헌금을 하겠다는 사람들도 많이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주님을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그는 엄마 품에 안겨 젖을 먹어야 하고 배설한 것을 누군가 치워주어야 하는 어린 아기로 오신 것이다.



예수님은 누가복은 2장에 나오는 것처럼 어린 시절을 보내셨다. 그는 키가 자라며 지혜가 자랐다고 했다. 그것은 정상인의 지능을 가지고 자라셨다는 것이다. 세 살 정도 되는 아이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해보자. 그러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아기들이 ‘또라이’처럼 보이는 것은 아기들이 적절한 룰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적절한 행동인지를 잘 모른다. 아기들은 자라면서 룰을 배워가는 것이다.



● 어느 선교사님의 아들 이야기



몇 년 전 부산에 사시는 장로님 댁에 식사초대를 받아 간 적이 있었다. 함께 초대를 받은 선교사 가정이 있었는데 세 살 먹은 남자 아이도 함께 왔다. 저녁식사를 하기 전까지 제법 예의바르게 행동을 하던 아이가 저녁식사를 하고 나더니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급기야는 경비실로 연결된 인터폰을 가지고 놀겠다고 한다.



엄마 아빠가 못하게 말린 것뿐 아니라 나중에는 집주인인 장로님 내외가 나서서 안된다고 하자 아기는 소파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찍어두었다가 20년 후에 보여주면 좋을 것 같아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싶었다.

“사진 찍어야지!”

사진기를 들이대자 그렇게 울던 아기는 일어나 손으로 L자를 턱 밑에 대면서 포즈를 취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아이들의 모습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런 과정을 모두 거치며 자라나셨다는 것이다.



이런 것은 선교지에 간 선교사들의 모습과도 매우 비슷하다. ‘도와주세요! 나는 천사표가 아닙니다.’ 라고 하는 책에 잘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