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선교

문화와 선교

문화와 선교 53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3:41
조회
91
● 연약함이 주는 유익



처음 두따와짜나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을 때는 1992년 2월이었다. 인도네시아는 유럽이나 미국의 대학처럼 9월에 학기가 시작한다. 내가 처음 인도네시아로 강의한 것은 1991년도에 입학한 학생들의 2학기 과목인 회계 원리 II였다.



물론 엉성한 강의였기 때문에 지금 돌아보면 아쉬움이 많았다. 당시는 언어가 부족해서 가르치는 것은 엉성했지만 학생들에게 성적은 잘 주었다. 왜냐하면 채점할 때 학생들이 무엇이라고 쓴 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틀렸다고 말할 자신이 없어서 대충만 썼어도 좋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 학기의 강의할 과목을 정할 때 학장이 내게 두 개의 선택안을 주고 무엇을 선택하겠느냐고 물었다. 학장이 제시한 첫째 안은 새로 입학하게 될 신입생들 그러니까 92 학번 학생들에게 회계원리 I을 가르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91 학번 학생들이 2학년이 되면 재무회계를 배우게 되는데, 그 학생들을 대상으로 재무회계를 가르칠 지를 결정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신입생보다 그래도 이미 알고 있는 91학번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생각이 되어서 2학년들에게 재무회계를 가르치겠다고 했다. 재무회계도 2학년 한 해 동안 I과 II로 나누어서 두 학기 동안 가르치게 되어 있었다.



두 번째 학기에 재무회계 I을 가르칠 때만 해도 내 인도네시아 어 실력이 첫 번째 학기보다는 나았지만 여전히 자신 있게 강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 학기가 더 지나고 즉 1993년 봄이 되어 재무회계 II를 가르칠 때 그러니까 두따와짜나 대학에서 가르친 지 세 번째 학기가 되었을 때 내가 말하는 인도네시아어에 자신감이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기간 동안 계속 콜로라도 라고 하는 학원에 가서 일주일에 두 번씩 인도네시아 언어를 더 공부했다. 그 때쯤에는 인도네시아어로 단편 소설을 읽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자 수업시간에 자신감이 생겼다. 적어도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하는 질문이 더 이상 두렵지가 않았고, 강의 도중에 생각나는 내용도 중간에 막히지 않고 설명해 줄 수 있었다. 이제는 제법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면서 아주 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세 번째 학기의 중간고사를 마치고 나서 학생들의 답안지를 채점하는 동안 나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학생들이 쓴 답안이 정말로 엉망진창이었다. 학생들이 알고 썼다기보다는 그저 아는 척을 한 것에 불과한 답안지가 대부분이었다. 나는 채점 결과를 보고 무척 당황스러웠다.



이번 학기의 재무회계 II를 끝으로 이제 학생들은 나에게서 회계학을 더 이상 배우지 않다. 이 학생들이 졸업을 한 후 직장에 가서 회계학을 잘 못해서 문제가 된다면 분명히 저를 원망할 것 같았다. 이번 학기에도 지난 두 학기처럼 대충대충 성적을 주어야 하는 지 아니면 곧이곧대로 성적을 주어야 하는 지를 가지고 고민했다. 적당하게 성적을 줄 것인가 아니면 곧이곧대로 성적을 줄 것인가를 가지고 고민하다가 결국 곧이곧대로 성적을 주기로 했다.



엄격한 채점의 결과로 나온 학생들의 성적은 평균 20점이었다. 그 채점한 결과를 그 다음 주 수업 시간에 들어가서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성적을 본 학생들은 모두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지난 두 학기 동안 모두 A 나 B 학점을 받았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성적이 나빠졌나 하는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실력을 아는지라 학생들은 감히 교수에게 따지지도 못하고 그저 어안이 벙벙한 눈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