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선교

문화와 선교

문화와 선교 54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3:41
조회
84
나는 학생들에게 중간 고사 성적에 만족하느냐고 물었다. 학생들은 만족하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이 전에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일을 시도해 보겠다고 말했다.



“이렇게 여러분들의 성적이 나쁜 데에는 내가 인도네시아어를 잘 하지 못하는 점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내가 인도네시아 말을 더 잘 했다면 이보다 나은 결과가 나왔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문제의 원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한국 대학생들에게 한국말로 회계학을 가르친다고 해서 그 학생들이 모두 100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책임도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하는 인도네시아 말이 어눌하면 여러분들이 집에 가서 책을 보거나 열심히 예습 복습을 해서 커버를 했어야 하는데, 여러분들은 그렇게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학생들은 조용히 내 말을 듣고 있었다.

“저는 여러분들과 고통분담을 하고 싶습니다.”

학생들은 내 말에 모두 귀를 솔깃하면서 그 고통분담이라는 것이 무어냐고 물었다.



“내일부터 여러분들과 한명씩 면담을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지난 중간 고사 문제에 대해서 새롭게 답안을 만들어 오십시오. 책을 보아도 좋고, 회계학을 잘 하는 친구에게 물어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 앞에서 제대로 대답을 하면 점수가 얼마든지 상관하지 않고 고쳐주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인도네시아 말로 ‘와완짜라’라고 하는 개별 면담이 시작되었다. 학생들은 내가 하려는 와완짜라가 어떤 것인 줄을 몰랐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교수가 점수를 빡빡하게 매겨 놓고 나서 좀 미안하니까 점수를 고쳐주기 위해서 구제책으로 이런 방법을 사용하는구나 하고 생각한 것 같았다.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기가 직접 공부를 해 가지고 왔다기보다는 남의 것을 그저 베껴가지고 왔다. 나는 그 학생들 한 명 한명에게 기본적인 질문을 했다. 남의 것을 베껴가지고 온 학생들은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나에게 지적을 받은 학생들은 다시 집에 가서 공부를 해 가지고 내게 다시 와야만 했다. 와완짜라를 할 때 나는 대충하지 않았다. 학생이 확신이 없으면 절대 대답하지 못하는 기초적인 질문을 했다. 학생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어떤 학생은 같은 문제를 가지고 내게 일곱 번 온 학생도 있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1학년 때 배운 교과서의 어디를 찾아보면 그 내용을 숙지할 수 있다고 이야기도 해주었다. 이렇게 해서 학생들은 기초적인 부분에 대한 이해를 다시 하게 되었고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태도도 완전히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