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선교

문화와 선교

문화와 선교 42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10-28 23:39
조회
96
로마 톰의 부채 이야기



톰 신부님은 화란 출신의 가톨릭 선교사다. 예수회 소속이다. 이미 주님의 품으로 가셨지만 만일 살아계시다면 지금 연세가 84세 쯤 되셨을 것이다.



톰 신부님과의 만남은 조금 특이하다. 인도네시아에 있을 때 가톨릭 배경의 대학생들이 조이 모임에 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모임에서 하는 여러 가지 활동에 관심이 있어서 왔지만 결국 주님을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가톨릭 배경의 학생들에게 가톨릭 교회를 떠나서 개신교 교회로 옮기라고 권하지 않았다.



1997년의 어느 날 톰 신부님이 조이 모임에 갑자기 찾아오셨다. 그는 자기가 섬기는 성당에 다니는 학생들로부터 조이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고 했다. 신부님이 찾아왔을 때는 매주 화요기도 모임에서 내가 설교를 하고 있었다. 그는 내 설교를 듣고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개신교 선교사가 캘빈이나 루터 이야기를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만 이야기 하는 것을 보고 마음을 더 열게 되었다고 했다.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식사도 하고 교제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톰 신부님은 나에게서 배운다고 하지만 사실은 내가 배우는 것이 더 많았다. 그는 인도네시아 가톨릭 신학교의 유명한 교수였다. 그는 모국어인 네덜란드어 이외에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에 능통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 그리고 라틴어로 성경을 자유롭게 읽었다. 인도네시아어는 인도네시아 사람들보다 잘 하셨고, 자바어는 세 가지 언어로 구성된 매우 어려운 언어지만 자바어로 설교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분이다. 동 티모르 언어인 케툼어로 신학을 강의할 정도다. 그 분이 못하는 말은 한국어라고 늘 농담을 했다.



신부님은 내가 인도네시아를 떠나는 것을 몹시 아쉬워했다. 그 후로 다시 만나게 된 것은 2003년부터 시작된 족자 세미나 때문이었다. 족자에 여러 명의 학생 사역자들이 가서 인도네시아 조이가 하는 사역을 보기도 하고 그곳 사역자들의 이야기도 듣고 서로 토론을 하는 시간도 가졌다.



톰 신부님은 그 세미나의 단골손님이었다. 자신이 본 조이에 대해서 간단명료하게 하지만 매우 의미있는 코멘트를 많이 해주셨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일이 있었다. 30분 이상의 본인의 이야기를 한 후 질의 응답하는 시간이 있었다.



참석자 가운데 한 분이 이런 질문을 했다.

“신부님은 이곳에 선교사로 오셨으니 만약 한국 선교사가 여기 조이에서 하고 있는 사역의 원리 가운데 어떤 것을 선교지로 가지고 가면 좋을 지 말씀해주세요.”



톰 신부님은 거의 논스톱으로 대답했다.

“선교사는 원리를 가지고 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선교사는 부채를 가지고 가는 사람입니다.”통역을 하면서 나도 어리둥절했다.

“선교지에 가면 그곳에 모두 불이 있습니다. 많은 선교사들이 본국에서 강력한 불을 가지고 옵니다. 현지의 연약한 불을 꺼버리고 자기가 가지고 온 불을 붙여놓습니다. 하지만 선교사가 철수하고 나면 자신이 가지고 온 불도 꺼지고 현지의 불도 꺼집니다. 선교사들은 부채만 들고 가서 현지의 불을 살려놓고 오면 됩니다.”



세미나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톰 신부님의 대답에 놀랐다. 부채라고 하는 단어로 선교의 가장 중요한 원리를 간단하게 설명하는 모습이 마치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를 간단히 비유로 이야기 하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은 나 혼자만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