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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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 65: 나의 실패담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24-01-23 10:52
조회
36
3. 나의 팀사역 경험
한국 선교사들은 팀사역을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도 개인적으로 사역지에서 팀사역을 한 적이 두 번 정도 있었는데, 모두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래서 나도 프로젝트 티모티 훈련을 받기 전까지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프로젝트 티모티 훈련을 받고 나서 나는 그 말은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 팀사역에서 좋은 결과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1) 죡자의 대학생 사역
내가 사역했던 인도네시아 죡자카르타라는 도시는 대학생들이 많았다. 인도네시아 OMF 필드가 나를 그곳으로 보낸 것은 대학생 사역에 유리하다는 이유가 아니라, 나를 관리감독할 선배 선교사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곳에는 이미 인도네시아에서 20년을 사역한 베테랑 선배가 있었는데, 그는 안젤라라는 이름의 호주 출신이며 여성 독신 선교사였다.

초년생인 나는 안젤라 선교사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인도네시아는 넓은 지역을 커버하는 필드여서 족자는 필드 안에 있는 한 지역으로 분류되었고, 안젤라는 지역 책임자였으니 공식적으로도 내 상관이 셈이었다. 그리고 내가 죡자에서 사역을 시작한 2년 뒤에 마르쿠스라는 이름의 스위스 출신 선교사 가정도 오게 되어 우리 세 가정이 한 팀이 되었다.

우리는 처음부터 팀이라고 했기 때문에 팀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팀이라기 보다는 그룹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처럼 팀이라는 것과 그룹이라는 정의만 분명해도 넘어갈 수 있었던 시행착오를 하게 되었다.

영어 모임의 시작
나는 두따와짜나 대학교에서 회계학을 강의하고 있었고, 안젤라는 내가 죡자에 오기 전부터 상담학을 가르치고 있었고, 마르쿠스는 건축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1992년 9월에 두 명의 대학생이 나를 찾아와 영어를 하고 싶다고 해서 우리 집에서 금요일 저녁마다 영어로 진행하는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모임에서는 영어로 노래도 배우고, 게임도 하고, 바이블 스터디도 했다.

처음 모임은 미미했다. 5명 이내의 학생들이 한 학기 동안 모임에 참석했다. 어떤 날은 한 명도 오지 않는 날이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학기부터 학생들이 많이 모이기 시작했고, 회장단도 생기고 임원들이 생기면서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모임의 이름도 JOY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한국 죠이선교회의 이름을 따온 것이었다. 한국 죠이선교회에서는 그 이름을 사용하도록 허락했고, 우리 모임을 한국 죠이선교회의 지부는 아니지만 같은 정신을 공유하는 해외 사역으로 인정해주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학생들이 늘어나고 그 모임에 자연스럽게 안젤라도 참석하고, 마르쿠스도 참석했다. 안젤라는 우리가 죡자 팀이고 그래서 JOY 사역도 함께 한다고 늘 강조했다. 그리고 나도 그런 의식에 별다른 저항이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가 커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