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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서 제자훈련 받으라와 가서 제자 삼으로

작성자
손창남
작성일
2016-09-22 08:41
조회
562
어제 마태복음 마지막 부분을 묵상하면서 두 말이 비교가 되었다. "우리 교회 와서 제자 훈련 받으라"와 "가서 제자 삼으라" 많은 교회들이 제자훈련을 하고 있다. 많은 경우 목표가 교회의 훌륭한 일꾼을 키우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분명히 가서 제자를 삼으라고 했다.

몇 년 전 아내와 두타산이라고 하는 곳에 간 적이 있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 이름이 익숙했다. 산을 내려오다가 휴양림 관리하는 사람을 만났다. 혹시 두타라는 이름이 무슨 뜻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친절하게 그것이 불교의 두타행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두타행이란 수행을 하던 스님들이 민가로 포교를 하러가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불교가 부흥하던 시절에 스님들은 절에만 있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깨달은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찾아가 증거했다.

만약 두타의 뜻이 그렇다면 그 말은 내게 매우 익숙한 말이다. 내가 족자에서 가르치던 대학의 이름이 두따와짜나였다. 두따와짜나는 두 개의 단어로 이루어졌다. 앞의 두따라는 말은 대사, 혹은 사신이라는 뜻이다. 와짜나는 경전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대학의 이름이 경전의 사신이라는 의미다. 인도네시아 성경에도 고린도 후서 5장 20절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사신이 되어"라는 말을 두따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어에는 격음이 없다. 우리말에는 두따라는 말도 있고 두타라는 말도 있지만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두타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모든 격음을 두따라고 경음으로 소리낸다. 그렇다면 우리가 두타라고 한 말을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두따라고 발음했을 것이다.

인도네시아에 이슬람이 들어오기 전에는 인도의 영향을 받았다. 족자는 자바왕국의 수도로서 특히 힌두교와 불교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은 곳이다. 지금도 그때의 유적이 도처에 있다. 그러니 우리나라 산에 있는 두타산의 두타와 족자의 두따와짜나의 두따가 같은 의미라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같은 두타의 모습이 성경에도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태복음 10장에서 두타행 연습을 시키신다. 그리고 실제로 마태복음 28장에서 두타행을 하라고 권하시는 것이다. 사도행전 13장에서 안디옥 교회가 바나바와 사울을 보내는 것도 일종의 두타행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그림이 바로 가서 제자삼으라의 모습이다. "와서 제자훈련 받으라"만 있고 "가서 제자 삼으라"가 없는 기독교는 본질에서 심히 왜곡되어 있다. 어쩌면 불교의 두타행만도 못한 상황이라고 할 것이다.